숭은사 배향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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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龜溪公 (구계공)
世代 |
휘 (諱) |
號 (호) |
生 |
卒 |
관 직 |
14세 |
인상(麟祥) 인백(仁伯) - 字 |
구계(龜溪) |
1554년 |
1635년 |
∙증, 가선대부 |
일찍이 그는 성여신, 진극경 등과 더불어 퇴계선생의 글(聖學十圖)을 읽고 의리를 분별하였고, 1559년(명종 14년)에 남명선생을 뵙고 제자가 되었다. 남명 조식 선생 문하에서 수학. 공이 병이 들어 귀가하자 선생이 공의 재주를 애석히 여겨 「몸을 사랑하기를 옥같이 하고, 마음가짐을 물같이 하라. 옥이 이지러지면 둥글기 어렵고, 물은 한번 엎질러지면 거두기 어렵다」고 하였으니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
진극경이 하응도에게 준 글에 의하면, “남명문하에 숨어서 드러나지 않았지만, 깊이 묘리(妙理)를 얻은 자는 정군인백이 그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남명의 가르침을 잘 전수하였다고 한다.
남명 선생 문인인 승사랑 훈도 가선대부 중추부사 浮査 성여신, 백곡 진극경, 매촌 문홍운, 하용도公등 제현과 교분이 깊었으며, 임란 후 영의정 정인홍이 예조정랑(정6품) 벼슬을 적극 천거했으나 거절하고 용담호 아래 구계정사를 짓고 후학을 가르쳤다. 「발 걷으니 남쪽에 달 밝았고, 문에 서니 북쪽의 바람 부네, 좋은 땅 만나서 그 가운데 내가 늙네」란 편액을 구계정사에 걸었다. 공은 효행이 뛰어나 임란 시 왜병조차 감동시켜 「천출의 효자이니 만약에 해하면 우리가 천벌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며 왜병들이 경계하였다고 한다.
장수(82세)하여 嘉善大夫(가선대부, 종2품)에 추증되었다. 현재 지수와 고성 대가에 600여 호의 후손이 웅거한다.
기록 및 유적
구 분 |
제 목 |
찬 (撰) |
소 재 지 |
비 고 |
行狀 |
龜溪麟祥 行狀 |
孫子 주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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碑 |
龜溪麟祥 墓碣銘 |
문소 김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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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 書 |
龜溪遺稿 |
구계 정인상 |
정교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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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麟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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